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르 트뤼도 (문단 편집) == 개요 == > 개인의 침실에 국가의 영역은 없다 > There is no place for the state in the bedrooms of the nation. [[https://www.cbc.ca/player/play/1811727781/|(영상, 37초부터)]] [[캐나다]]의 15대 총리. 초선 임기는 1968년 4월 20일 ~ 1979년 6월 3일이며[* 중간에 보수 성향이자 캐나다 16대 총리인 [[조 클라크]]가 집권했으나 감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드라이브를 걸려고 해서 1년을 못 채우고 다시 트뤼도에게 정권을 내줘야 했다.] 재선 임기는 1980년 3월 3일 ~ 1984년 6월 30일이다.[* 캐나다 총리는 미국의 대통령과 달리 임기 후 다른 사람이 총리직을 맡은 이후 다시 총리가 돼도 같은 '-대'로 구분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미국에서 22대, 24대 대통령이지만 트뤼도는 15대, 17대 총리가 아닌 그냥 15대 총리로 기록한다.] 서거 후 자식인 [[쥐스탱 트뤼도]]도 정치를 시작하여 캐나다 최초의 부자 총리가 되었다. 캐나다 [[사회자유주의|리버럴]] 진영에서는 신화와 같은 존재이며, 근현대 캐나다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세계사적 비중을 지닌 정치인이다. [[쥐스탱 트뤼도|아들]]과 달리 피에르 트뤼도는 오늘날 보수진영에서도 대체로 호평받고 있다. 리버럴 진영에서는 '캐나다식 자유주의'[* 캐나다 자유당이 표방하는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중도[[자유주의]] ~ [[사회자유주의]]에 속한다.](특히 젠더 문제에서)의 아버지로 평가하며, 보수진영에서는 트뤼도의 1992년 '캐나다 6개 계급론'[* 트뤼도는 1992년 연설에서, 당시 국민투표에 부쳐졌던 Charlottetown Accord 개헌안이 '퀘벡인', '원주민', '영어권 내 불어화자' 등 특정 정체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렇지 않은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수준까지 부당한 이득을 갖게 만든다고 주장하며, 이 개헌안을 불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파는 이 연설을, 정체성에 기반한 정치적 올바름이 21세기에 들어와 큰 화두로 오르기 전에 이미 이것의 문제점을 예견한 것으로 평가한다. 결국 Charlottetown Accord는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연설을 오늘날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 反[[정치적 올바름|PC]] 및 反퀘벡민족주의 논리로 삼기도 한다. 어찌됐든 현대 캐나다의 기조를 만든 위대한 정치인 중 한 명임은 틀림없다. 트뤼도의 첫 임기는 유럽의 [[68운동]]으로부터 달성된 성취가 캐나다에서 자리잡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미국과 다른 캐나다의 정체성이 있다면 그것은 트뤼도의 정책에서 상당수 기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오늘날 캐나다 국민들이 자부심으로 삼는 무상의료나 자유주의의 토대가 트뤼도에 의해 세워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